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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하이에 한국인의 이주역사는 어떻게 될까? 1882년도의 기록을 보면 이 시기에 이미 상인과 유학생이 상하이에 거주하였다고 보고되고 있고 1913년에 출간된 동방잡지(东方杂志)에서는 23개국에서 온 외국인 중 한국인이 두 번째로 많다고 소개되기도 하였다. 상하이와의 교류역사가 깊은 만큼 우리한인과 관련된 지역도 적지 않다. 이번 호에서는 우리와 친숙한 지역위주로 우리와의 연관성을 찾아 소개하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다.
하비로(霞飞路)
하비로란 안개가 흩날리는 거리라는 뜻으로 소설가 이인화가 1930년대의 상하이를 배경으로 쓴 역사판타지 소설이다.
이미 잃어본 독자도 있겠지만 간단히 내용을 정리해보면 보희미안 구락부의 연쇄살인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조선인 형사 이준상이 조조의 비밀무덤 지도의 행방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중국과 일본, 조선의 암흑세력이 벌이는 악과 악의 격전에 휘말리며 자기 자신을 발견해 가는 이야기이다. 이 하비로를 상하이에서는 화이하이루(淮海路)라 부른다. 화이하이루가 어딘가 난징루와 함께 상하이를 대표하는 거리 아닌가 소설가 이인화는 상하이의 심장을 관통하는 화이하이루를 소설의 제목으로 이용한 것이었다.
우리에게 친숙한 화이화이루는 어떤 곳일까? 150년 전 영국이 조계지에서 난징루 개발에 한창일때 프랑스도 상업거리 조성을 하게 되었는데 프랑스 오동나무를 길 양쪽에 심어 프랑스 느낌을 살리고 유럽풍의 건축물로 개발하였다. 지금은 동, 중, 서 3분하여 나누어져 있으며 총길이 5㎞에 달하는 거리에는 400여개의 쇼핑몰이 운집해있어 명실상부한 상하이의 대표거리로 자리 잡았다.
백정기와 하천
1932년 4월29일 아침 홍구공원 한 사나이가 비장한 각오로 거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이미 치밀하게 준비한터라 자신은 있었지만 홍구공원에 들어가기 위해 중국동지가 가져다 주기로 한 출입증이 도착하지 않아 조바심이 나기 시작하였다. 결국 중국동지는 오지 않았고 거사를 실행할 절호의 기회를 놓친 것에 대해 안타까워할 때쯤 멀리서 거대한 폭파소리(윤봉길의사가 던진 물통 폭탄)가 들리는 것이었다. 이 사내는 나대신 누군가가 해내었구나 중얼거리며 황급히 몸을 숨겼다. 이 사내가 백정기라는 인물로 우리에게 아나키스트라는 영화의 주인공이다.
하비로와 같은 배경인 1930년대 상하이에서는 독립운동이 한창일때로 백범 김구선생이 이끄는 임시정부와 한인애국단과 약산 김원봉이 이끄는 의열단 그리고 정화암의 남화한인 연맹이 있었다. 윤봉길의사가 한인애국단 대표선수였다면 남화한인연맹의 대표는 백정기였던 것이다. 킬러 백정기의 이름은 그 당시 지명도에서나 그의 화려한 저격경력이 일본으로서는 큰 위협으로 느껴졌다고 한다.
그런 그가 저격활동을 위해서는 꼭 지나가야 하는 하천이 있었다. 당시 황푸강을 오른쪽에 두고 북쪽부터 러시아 조계, 일본조계(홍구공원), 영국조계(인민광장), 프랑스조계(화이하이루)순으로 되어있었는데 프랑스조계와 영국조계지역 사이에 황푸강으로 흐르는 하천이 있어 프랑스 조계지에 근거를 둔 그로서는 이 하천이 생명을 넘나드는 경계였을지도 모른다. 그에게 생명선이었던 하천이 지금은 복개되어 상하이를 동서를 가로지르는 길이 되었다.
연안루(延安路), 연안고가가 그것인 것이다. 연안루 및 연안고가는 우리한인들이 가장 애용하는 길 중 하나로 중국 해방전까지 여러가지 이름으로 불리다가 중국 해방 이후 중국혁명의 근거지인 연안을 본 따서 연안루로 불리고 있다. 총길이 14220m에 황푸, 루안, 찡안, 창닝 4개 구를 가로지르며 1999년부터 차량통행이 이루어져 상하이동서행에 주요교통의 핵으로 자리매김하였다. 연안루를 이용할 때 한번쯤 일본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던 독립 운동가이자 프로 저격수 백정기를 떠올려 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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